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광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모티브 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이은
우리 대한민국 현대 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다뤘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는 소식 이후
읽게 된 또 하나의 가슴 시린 소설과의 만남이다.
소설의 시작은 꿈속이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수 천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은.
이 나무들이 모두 묘비인가...
발 아래 물이 차오른다.
뼈들이 썰물에 휩쓸려 가기 전에 옮겨야 한다.
급박한 생각을 하지만,
실행되지 않는 답답함 속에서 눈을 뜬다.
주인공 경하는 소설가이다.
경하는 전에 썼던, 아마도 <소년은 오지 않는다>를 말하는 것이리라.
광주사건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무거움이 꿈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경하는 개인적인 작별을 위한 유서를 쓰고 있다.
음식을 넘기지 못할 정도의 위장장애.
그리고 두통.
힘든 생활이 계속되고 있는
어느 날 인선에게 문자가 왔다.
인선은 사진작가이다.
대학졸업 이후 함께 일했던 경하와 인선.
꿈에 대한 영상을 언젠가 만들어 보자는 계획을 했던 20대의 꿈.
인선은 갑자기 엄마의 간호를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면서 연락이 뜸했던 사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려 온 인선의 전화는 예사롭지 않음을 예고한다.
인선의 부모님을 통한 제주도의 비참한 4.3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서 이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다.
평범한 우리들에게 제주 4.3은 역사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저편의 이야기지만, 인선에게는 현실이고 벗어나고 싶은 슬픈 가족사였다.
청소년기를 겪으며 인선은 과거로부터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픔으로,
성인 이후 뭍에서 사진작가의 길을 걸으며 인연이 닿은 경하와의 작업과 꿈은 새로운 인생이었다.
역사 속 사건.
하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현실 앞에 한강이 꺼내 놓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직접적이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은데, 조용히 사부작사부작 우리의 가슴에 눈물 어린 메아리를 보내고 있다.
한강의 작품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훌륭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정서의 절제와 우회도로를 선택하며 갑자기 훅~ 들어오는 기법은 이 작가의 장기이며 독특함이다.
마구 들이대지 않으며 조금씩 틈을 좁혀오는 군사 전략처럼 대놓지 않고 가슴을 훔쳐가는 기법이 참 좋다.
그래서 또 어렵기도 하다.
육체적인 작별이 있었지만, 결코 작별할 수 없는 인선 엄마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피해와 아픔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정치적 신념도 아닌 소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제주 4.3 사건은 지금까지도 명확한 진실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진정한 작별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 하나하나가 뭉쳐야 하는 이유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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