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서평> 이도우의 장편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반응형

이도우의 소설을 처음 접하며 끌려 들어갔던 작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사랑을 이렇듯 섬세하게도 다룰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나의 첫 감정이었다.

책 표지

공진솔은 라디오 작가이다. 그녀는 뭔지 모르게 일이 잘 안 되거나 싱숭생숭한 날이면 연필의 나무 부분을 곱게 깎고 연필심을 갈아내는 느낌을 좋아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진솔의 라디오 프로그램 주소이다. 이 소설은 진솔의 라디오 프로가 개편되면서 새로 오게 된 이건 PD와의 만남을 사랑으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다. 진솔은 낯가림이 심한 편이어서 회사 내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이면서도 직접적으로 소심하다는 표현을 싫어했다. 그런 진솔에게 나타난 이건이라는 남자는 솔직하고 인기가 많으며 조금은 짓궂은 구석도 있는 남자였다. 이건은 피디이며, 시인이었다. 글을 볼 줄만 아는 게 아닌, 쓸 줄도 아는 섬세한 남자라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직장 생활이 늘 그러한 것처럼 진솔 또한 피디들의 성향에 맞춰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작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건의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고, 이건의 유쾌함과 섬세함에 조금씩 맘을 빼앗겨 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솔은 이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며 그냥 직장인들끼리의 유대관계 정도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이건의 애틋한 친구들인 선우와 애리는 이 소설에서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고, 인사동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선우는 헐렁한 개량 한복 같은 옷에 머리를 애리만큼 길게 길렀기에, 흡사 도사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도를 아십니까...? 하는 차림이었고, 애리는 곱고 가냘프게 여성적이며 세련된 이미지였다. 선우라는 남자는 늘 다른 세상을 그리워했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 버리는 방랑자 같은 남자였다. 애리는 그런 선우를 사랑했지만, 때론 버겁고 괴로웠으며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여자였다. 이건은 그들을 바라보며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갑자기 떠나버리는 선우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도 하며 애리의 사랑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진솔은 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말로는 표현 못할 야릇한 감정들을 느끼지만 딱히 이건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입장이 되어간다. 진솔은 이건에게 이 야릇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점점 자기감정의 뒤엉킴에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진솔의 소망이었던 시골의 한농가를 사게 되면서,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직장생활의 무거움과 자신과의 감정싸움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뒤 이사를 하게 된다. 소심한 진솔이었지만 이사 후에 다가오는 이건의 사랑에 솔직함으로 다가섰고, 이건 또한 애리와 진솔 사이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리하며 자기 안에서의 사랑이 진솔임을 깨닫게 된다.

수면 위로 막 보이는 밀당은 아니지만 섬세하게 다가가는 사랑의 표현들이 독자로 하여금 스멀스멀한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서두에서도 말했던 이건의 시를 중간중간 소개하는 것이나 다른 시인의 시구를 주인공의 마음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이다. 사랑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다만 각자에게 맞는 표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것에서 사랑이 쟁취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것일 게다. 2022년 우리도 얼마나 많은 사랑과 아픔을 겪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며, 다듬어 보고 반성해보는 11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11월의 단풍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