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말하고자 한 이야기!
<데미안>은 우리가 학창 시절 자의든 타의든 한 번쯤 읽어 봄직한 책이다.
나 또한 읽어 보았지만, 그저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공부의 도움이 되고자 겉핥기식으로 읽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두어 번 더 읽어본 데미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되지 않는 것 그대로이다.
다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성격의 다양함을 인정할 뿐이다.
<데미안>은 읽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어렵다.
왜 저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며 감상평을 써 보려고 한다.
<데미안>을 읽기 위한 밑받침은 기독교적 소양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나처럼 문외한인 사람은,
예를 들어 카인과 아벨 같은 이야기를 네이버 지식에 물어가며 문맥을 이해했다.
<데미안>의 작가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이다.
요즘 들어 더더욱 그의 어록들이 서점에 깔리고 있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독일의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 시절 자살시도를 하는 등 정신적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가 <데미안>을 쓸 때는 세계 1차 대전 중인 1916년이었고, 출판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이었다.
그는 <데미안>으로 객관적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에 가명을 이용했지만, 이내 헤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헤세는 인간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럽 사람들의 대립을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세계에 이르는 자기 구도의 방법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창작해 냈는지도 모르겠다.
<데미안>이라고 하면 주인공이 데미안이라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사실, 주인공의 이름은 에밀 싱클레어이다.
싱클레어라는 아이는 부모형제라는 따뜻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아이였다.
그에게 있어 가족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은 크로머라는 불량 친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싱클레어의 갈등과 고통은 그를 두렵게 만들었으며, 그 구렁텅이에서 구해 준 사람이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이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나,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의 이야기 등 싱클레어가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을 새롭게 해석하며 자신만의 깨달음 또는 비판적 인식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소속된 가정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찰하고 구도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는 데미안의 새로운 사상은 싱클레어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지게 하면서도 그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싱클레어가 부모를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될 즈음,
청소년기로 접어든 그의 정신은 점점 더 갈등과 혼란으로 빠지게 되었고, 그에 대체제로 찾은 것은 성과 술이라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점점 더 망가져 갔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갈구하고 있는 무언가를 인식하기에 역부족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책갈피에서 발견된 쪽지.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그동안 잊고 살았던 데미안의 글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싱클레어는 다시 그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싱클레어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데미안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 그리고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가 있었다. 피스토리우스도 데미안이 말한 압락사스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많은 것을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였으므로 결별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는 그동안 데미안을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의 주변에 늘 데미안이 존재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갈망하는 하나의 온전한 이미지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이었다.
자신의 구도 세계로 향하는 길 자체가 험난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에바 부인으로부터 들은 싱클레어는 더욱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데미안>의 마지막 부분은 전쟁에 참여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그리고 있다.
둘은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호송되었고, 싱클레어는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데미안을 느낄 수 있었다.
혼란과 고통 속에서 데미안의 입맞춤은 싱클레어를 편안함으로 이끌었으며,
싱클레어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구도자의 길은 이미 데미안과 닮아 있었고, 나 자신에 이르는 자아의 모습은 에바부인도 데미안도 아닌 싱클레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헤세의 외조부는 유명한 인도학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기본적인 소양은 기독교적인 토대이지만 구도의 길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불교의 영향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헤세는 여기에서 종교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에,
깊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을 내면으로의 충만함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 <데미안>은
함축적 의미가 너무 많아서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지만, 100년이나 지난 소설이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것을 보면 위대함 그 자체로 숙연해진다.
언젠가 또 언젠가...
읽어 볼 <데미안>인 만큼 스스럼없이 이해될 날이 있을지 가늠해 본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유안 작가의 「유쾌한 고독」 (2) | 2024.07.13 |
---|---|
<책리뷰> 김형찬 고려대 철학박사가 옮긴 「 논어 」 (0) | 2024.07.03 |
<책리뷰> 김진명의 장편소설 「미중전쟁1,2」 (0) | 2024.06.09 |
<책리뷰> 조윤제의 「 다산의 마지막 질문 」 (1) | 2024.06.03 |
<책 리뷰> 조윤제의 「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1) | 2024.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