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서평> 법정 스님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유효삶 2022. 10. 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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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안에 사계절이 있어요

법정 스님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난  8월이 끝나가는 어정쩡한 계절이 되면 법정 스님의 글이 늘 그리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래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책들을 꺼내 보았다. 사실, '무소유'를 다시 읽어 보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들춰 보다가 이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에도 스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해 보는 나로서는 무엇으로 첫 테이프를 끊을지가 관건이었지만 계절이 가을인 만큼 스님의 많은 책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이 책은 그전에 출판했던 글들 중에서 계절과 자연에 대한 글을 다시 모아 류시화 님이 새롭게 엮은 책이다.

 

법정스님이 산속에서 생활하며 자연과 함께 겪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현상과 신비로움을 4장에 걸쳐서 글로 옮기셨고, 마지막 장은 십여 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보낸 법정스님의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엽서에 굵은 만년필로 쓴 엽서가 요즘은 보기 힘든 우표와 스탬프를 찍은 모습으로 소개되어 있고, 스님의 친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향수를 불러옴에 충만했다.

 

    스님은 지난가을 이후 감추었던 대지의 빛깔이 다시 번지고 있음을 이라고 표현하셨다. 모든 생명이 살아서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에서 봄의 알림이 시작되고,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숲이 잔기침을 시작하면 먹이를 찾느라  찾아든 딱따구리에서 할미새까지 가벼운 몸짓으로 인사를 한다고 한다.

 

흙 속에 묻힌 한 줄기 나무에서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건이야 말로, 순수한 모순이야말로 나의 왕국에서는 호외 감이 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본문 p27)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때, 할 수 있다면 이런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으로 옮아가고 싶다.... 생략....... 생략... 나는 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 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그 원이 이루어지도록 오늘을 알차게 살아야겠다.(본문 p29)

 

스님은 겨울산이 적막한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새소리가 없어서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꽃과 나무가 있는 산속에 생명체의 소리가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귀가 아름다움을 듣지 못해 예술을 창조해 내지 못하는 슬픔을 이야기한 듯하다. 스님의 책 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도’ 많은 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처럼 스님은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나니 이 대지에 봄이 온다고... 꽃이... 없는 봄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인들 할 수 있겠는가.

 

여름    스님이 사계절 중에서 여름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공감하면서 좋은지... 나... 또한 끈적끈적한 여름이 싫다. 스님은 고온다습한 기후, 모기, 벌레 등 괄괄한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내 성격 또한 괄괄한 건가...?

 

옛 선사들의 가르침이 있듯이, 더울 때는 더위 그 자체가 되고 추울 때는 추위 그 자체가 되어야, 더위와 추위에서 함께 벗어날 수 있다.(본문 p75)

 

우리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많은 몸부림을 한다. 얄팍한 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뭔가 엄청난 행복에 휩싸여 사는 양 사진 퍼레이드로 현혹시키는 등... 하지만 실상은 어떨는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침묵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아차려야 한다고도.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본문 p83)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 (본문 p90) 

 

가을    스님은 모든 계절의 시작을 바람결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바람의 냄새라고 표현하고 싶다. 설렁설렁한 가을의 냄새처럼 어떤 계절이든 그만의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계절도 바뀌고 세월도 흐른다. 이 속에서 우리들은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때로는 울분을 토하며 흥분을 하다가 이내 까맣게 잊어버리면서 살 만큼 살다가 병들어 혹은 뜻밖의 사고로 죽는다. 모든 것은 이와 같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해 간다. 제행무상의 소식.(본문 p98)

 

스님은 10월 말이 되면 나그넷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혼자 산속에 살다가도 다시 자신의 그림자만을 챙겨 다시 산에 오르는 이유는 보다 더 투명해지고 더욱더 단순해지고 싶어서란다.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불투명하고 복잡한 우린 스님의 책 속에서라도 깨달음을 얻어야 할 텐데......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온통 사색할 수 있는 자연들로 가득 차 있다. 내 육체를 바쁘게 움직여 삶의 공간을 채워가다가도 이 가을 앞에선 누구나 한 번쯤 인생 철학자가 되어간다. 떨어진 나뭇잎이 땅으로 땅으로 기어 들어가 내년 봄을 약속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인생의 봄이었던 적을 여름이었던 적을 추억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이기도 반성이기도 한 마무리를 해보기도 한다.

스님은 자연과 인간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에서 치유받으며 한 줌의 재로 뿌려질 곳 또한 자연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채소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그만큼 자주 보살펴야 한다는 말이겠지... 내 집에도 몽우리가 잔뜩 올라선 국화 화분 하나 들여놓고 주인의 보살핌을 선사해야겠다.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향기가 있을 법하다. 체취가 아닌 인품의 향기 같은 것. 그럼 난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나 자신은 그걸 맡을 수 없다. 꽃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없듯이. 나를 가까이하는 내 이웃들이 내 향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본문 p130)

 

겨울    스님은 모든 것은 변하고,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씀하신다.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해결 또한 빨리 보려고 하는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 같아 더욱 숙연해진다. 뻔히 아는 진리 같지만 실상 현실 속에서는 그러질 못해 화가 나고 답답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다. 자신의 삶에 단순함을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한다.(본문 p135)

 

겨울은 우리 모두를 뿌리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보는 반성의 시간이며 내가 누구인지 현실의 나를 찾아보는 그런 계절이라고 말씀하신 듯하다. 겨울이 되면 늘 춥고 허허로운 것만은 아니다. 눈 오는 풍경을 생각하면 특히, 눈 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봄날 벚꽃이 날리는 것처럼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사람들은 눈이 내리면 다음날 질퍽거리고 교통체증을 말하며 현재를 즐기기보단 불편한 생활을 먼저 상기시킨다. 하지만 난 눈이 좋다. 아니 눈 내리는 그 풍경이 너무 좋다.

 

나는 겨울 숲을 사랑한다. 신록이 날마다 새롭게 번지는 초여름 숲도 좋지만, 걸 치적 거리는 것을 훨훨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의 기상에는 미칠 수 없다.(본문 p161)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겨울은 그만큼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가는 자숙의 시간이요. 무의식 속 자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계절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누구나 성숙하고 멋진 인품을 갖는 건 아닌 것 같다. 육체의 나이가 더해지는 만큼 정신의 나이도 불려 가는 멋진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름날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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