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 책만 보는 바보에 나오는 실학자들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 머리말
지은이 안소영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 인물들의 뒷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상상해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글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조선 후기 이덕무가 1761년에 쓴 '간서치'전을 발견하고 그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 이야기 시작
1792년 12월 20일
서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이덕무의 이야기... 젊은 시절 같은 처지의 벗들과 백탑 아래
옛 동네에서의 생활상을 그린 자서전 같은 이야기...
이십 여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서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덕무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반상의 계급이 심했던 조선시대의 서자란 물려받을 재산뿐만 아니라 벼슬을 해서 월급을 받을 수도 없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 시절 이덕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방에 앉아서 햇빛이 비추는 밝은 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그런 이덕무를 보고 '책만 보는 바보' 라며 놀렸고, '간서치'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가난했던 이덕무는 추운 겨울이 되면 더욱 생활이 궁핍해졌다. 홑이불 한 장으로 견뎌야 했던 이덕무의 눈에 들어온 <한서>의 한 질로 이불 가장자리 위에 책을 쭉 올려놓은 뒤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체온을 유지했다고 한다. 벽이 갈라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촛불이 흔들릴 때는 <논어> 책을 펼쳐 등불의 흔들림을 막는 일도 있었다.
흉년이 든 어느 해인가 이덕무는 자신의 배고픔이야 참을 수 있었지만 가족들의 애처로움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필사해 온 <맹자>를 내다 팔고 그 대신 양식을 얻어 왔다. 학자로서 속이 상했던 이덕무는 그의 벗인 유득공을 찾아가 신세 한탄을 했고, 그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유득공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던 <좌 씨 춘추>를 뽑아 술을 사 오게 하여 회포를 풀었다.
조선시대의 주가 되는 사상은 유교였다. 공자가 말씀하시는 삼강 오륜중 이덕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붕우유신 하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각사 십층 석탑’을 이들 벗들은 백탑이라고 불렀으며, 백탑 아래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덕무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맞게 되었다.
첫 번째 소개할 친구는 유득공이다. 유득공은 이덕무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지만, 늘 환한 웃음을 띠는 허물없는 친구였다. 젊은 시절부터 역사가 깃든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단군이 세운 고조선에 관심이 많아서 옛 고구려의 영토와 부여, 발해의 문헌에 관심이 많아 돌아보며 기록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발해고>의 저자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친구는 박제가이다. 솔직한 성품과 대범해 보이는 외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이덕무만이 알고 있는 박제가의 성품은 여리고 고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만 해도 혼란했던 중국 역사에서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소멸되고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던 때라 조선의 양반들은 명나라를 그리워했고,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라고 하며 무시하였다. 하지만 박제가는 상공업의 발달과 변하고 있는 청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렇기에 박제가는 백탑 동네의 시장이었던 운종가를 구경하며 조선의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하는 면모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친구는 이덕무의 처남이자 친구인 백동수였다. 백동수는 유일한 무인 집안의 자손이었고, 어릴 때부터 밖에서 노는 전쟁놀이 등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스승을 찾아 모든 무술을 수련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의 생계가 막막하여 강원도 인제 기린협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백탑 아래 벗들은 백동수의 이사를 슬퍼하였고, 이사 가는 날 박제가의 편지를 짧게 소개한다.
“하늘 아래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이덕무는 책에 파묻혀 살면서 늘 그리워했던 것이 '스승 '이었다.
그러던 중 이덕무 아니, 벗들과 함께 스승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실학을 대성한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선생이었다. 서자로서 나아가지 못하는 슬픔으로 혹시 비뚤어질 것을 염려하여 글 쓰는 것을 지도해 주시거나 격려해 주었다. 스승들은 조선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며 선입견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늘 해 주었다. 특히, 담헌 선생께서는 지구와 우주에 관한 천문학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가르쳐 주었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잘 보아야 한다고도 말해 주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백성들이 편하고 좀 더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청나라에 다녀와 사람들이 볼거리를 묻자
“깨어진 기와 조각과 똥거름이 가장 볼만 하더이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청나라에 있는 진귀한 보물이나 서적 등을 궁금해했지만 연암 선생은 실생활에 쓰이고 있는 깨진 기와 조각의 쓰임, 즉 담을 쌓는 데 사용하거나, 비가 오면 흙바닥에 깨진 기와를 깔아 신발을 버리지 않게 하는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똥오줌조차도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형식이나 체면보다는 백성들의 실질적인 생활상에 관심이 많았다. 비록 조선의 양반들은 오랑캐라며 멸시했지만 연암 선생은 그 모두를 배움의 자세로 자리를 잡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무의 나이 마흔을 앞둔 어느 해, 박제가와 함께 사신으로 임명되어,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 시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조대왕의 시대이다. 정조는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실력 있는 젊은 학자들을 많이 기용했다. 이때 정조와 함께 개혁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 규장각 출신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었다. 연경에 사신으로 간 이덕무와 박제가는 시간만 나면 옛 서적과 예술품들로 가득 찬 연경 거리를 활보했고, 특히 박제가는 중국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상인을 천대하지 않고 선비들도 직접 물건을 구입하는 상공업의 형태에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박제가는 백성들의 삶에 이로운 것에 대해서 기록을 하였고, 훗날 상업과 농업, 신분제도, 과거제도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지적과 해결방안을 담은 <북학의>를 편찬했다.
이덕무는 나이가 들어 어린 손자를 볼 때 자신보다는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고,
1793년 1월 25일 아침, 이덕무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쉰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만 보는 바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덕무의 그 바보스러움이
답답하다고 느끼면서도 때론, 기다림을 책만 보면서 버텨질 수 있는지가
의아했다.
비슷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뭔가 부딪치고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땐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격언이 나를 지배하며 책 속으로 계속 계속 빠져든다.
‘사농공상’이라는 뚜렷한 계급이 살아있던 시절과
넉넉하지 못한 살림, 그리고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어왔던 시대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
이런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에 조선 후기 젊은 학자들로부터
‘실학’이라는 학문이 대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능력’ 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나온 말 ‘돈도 능력이다.’
충격!!!!!!!!
그러면서... 사실은...
능력 위에 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 인정하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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